글과 말은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으나, 실은 더 많은 것이 생략되어 있다. 행간의 의미를 읽지 못한다면 글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때가 언제인가. 2010년 가을, 귀국하여 복직을 하였으나 적응이 어려웠다. 동기들은 진급하여 내 상사가 되거나, 시청에 근무하고 있는데 나는 다시 동사무소로 발령을 받았다. 동료들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나보다 훨씬 젊었고, 사고방식이 달랐다. 그나마 사무장으로 내 우산이 되었던 동기가 떠나고 새로운 사무장이 왔을 때, 사소한 오해로 충격을 받고 나는 병이 났다.
사람이 무서웠던 어느 봄, 그 때 나는 한동안 남녘의 수도원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고 있었다. 이 수도원에는 피정을 원하는 사람들의 숙소가 산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었는데 나는 사람을 마주치지 않을 가장 외진 곳의 숙소를 청해 받았다. 공동으로 식사를 하는 것도 싫었던 나는 먹을거리를 사서 냉장고에 재어 놓고 혼자 숙소에 콕 쳐박혀 있었다.
그 때 마당에서 사부작사부작 한 수녀님이 민들레 뿌리를 캐고 있었고, 길 옆의 숲에서는 다른 한 수녀님이 진달래꽃잎을 따 모으고 있었다. 마치 숲 속의 다람쥐처럼 그 분들은 먼저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 수도원을 떠나 집으로 돌아온 후, 엽서도 한 장 받았던 거 같다. 지금보니 그 때는 부활이 이 무렵이었구나.
이전에 나는 우리나라에 그렇게 수도원이 많다는 것을 몰랐고, 수사는 성인전에나 나오는 거지 실제로 살아있는 수사를 본 적도 없었다. 성당의 수녀들은 보았지만 근처에 다가가 본 적도 없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군림하는 사람들이고, 겉으로는 수도복을 차려 있고 있으나 사고는 세속적이어서 그 괴리가 더 역겨운 사람들이었다.
이제는 생각이 좀 달라졌다.
우리와 다를 바 없다 할지라도 머 어떠랴.
그래도 그의 삶 어느 시기에 빛나는 도약의 순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도약과 타협 사이를 오락가락 하며 살고 있다있다 해도
어쩌면 매몰되지 않으려 나름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음 주에 수도원의 축성식에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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