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환풍구 사고의 사망자는 16명이었다. 시신은 중앙병원과 제생병원에 나누어 안치되었다. 대책반 운영과 장례식장 비용, 그 날 밤의 식비를 지불하기 위한 예산을 세우고 집행하는데 두달이 걸렸다. 그 긴박했던 날들을 넘기고 장례식장과 식당을 돌아다니며 밀린 돈을 갚고 돌아와 자리에 앉아서 나는 옆자리의 직원에게 별 생각없이 한마디 했다. “이상해, 내가 16명 모두의 상주가 된 거 같아” 그런데 그 말을 마치기도 전에 울음이…
대낮, 50명이 넘게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나는 참지 못하고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사람들이 추락하기 직전에 그 옆을 지나가지 않았던가. 자기가 죽을 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무대를 보고 있었던 그 사람들의 삶은 어떠하였을까? 우리 삶 또한 이렇게 한 순간에 끝나 버릴 수 있는건데…
이어서 생각은 나에게 미쳤다. 사람이 그렇게 죽을 수 있는거라면 나는 지금 바로 죽어도 좋을 그런 일을 하고 있나? 나는 아직 더 공부하고 싶은데 돈을 모으기 위해 일하고 있다. 그건 시간을 팔아 돈을 사는 거잖아. 그럼 셈법을 바꿀 수도 있겠네…돈을 팔아 시간을 살 수도 있잖아?
그 날 부터 며칠 동안 나는 지금 퇴직을 하면 얼마를 받을 수 있을지 계산을 해 보았다. ㅎㅎ 좀더 신중하게 생각했더라면… 나중에 보니 몇달만 더 근무하다 사표를 냈더라면 퇴직금 계산 기준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 나는 옆을 돌아볼 수 없었다!
12월 말 명퇴신청을 하고 2015년 1월 벽두부터 출근을 하지 않았다. 퇴직은 그보다 몇달 뒤였지만 그동안 밀린 휴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발견한 것은 더불어숲교실의 회원모집 공고였다. 신청을 하자 그 자리는 신영복 선생님이 직접 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분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책을 읽는 모임이라고 했다. 난 상관없었다.
그 교실에서 나는 신영복 선생님이 성공회대에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영복 선생님 글 중에 “존재론에서 관계론으로”라는 짧은 글이 있다. 근대 서구의 합리주의를 존재론이라고 한다면 관계론은 동양사상을 의미하는 듯 했다. 그러나 서구는 근대 이전 천년의 그리스도교 문화가 지배하던 곳이고 거기에는 그리스도교적 관계론이 있다. 나는 서구의 관계론과 신영복 선생님의 동양적 관계론을 연결해 보고 싶었다.
다시 인터넷 검색으로 성공회대 사회학과 홈피에서 김진업 교수님의 이메일 주소를 보고 편지를 썼다. 2015년 6월 1일, 나는 처음 성공회대에 왔다. 교수님은 바로 입학을 하지 말고 한 학기 청강을 해 보라고 권하셨다. 사회학과와 협동조합 경영학과의 수업을 들어 본 후 나는 사회학과를 택했다.
2016년 1월 내가 입학을 하기도 전에 신영복 선생님은 세상을 떠났다. 그 분의 지도를 받고 싶어 온 학교였는데… 나는 언제나 한발 늦는다. 김진업 교수님은 그 분은 떠났지만 여기는 그 분의 제자들이 교수로 포진하고 있으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에 이 학교보다 적절한 곳은 없을거라고 격려해 주었다.
2016년 두번이나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가 한국을 방문했고, 이를 계기로 연결된 연구자들과 함께 번역한 책이 2020년 11월 출간된 “콤무니타스 이코노미”이다. 공동수정을 하며 나는 내 논문의 주제가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해했다. 얼마나 행복한 경험이었던가! 같은 해에 12월 한달 간격으로 내가 번역한 “숲과 나무”도 출간되었다.
2021년 말, 논문이 심사를 통과하였다. 성공회대에 온 지 6년 반만이었다. 2022년 가을 학기에 나는 내 논문으로 신규강의를 개설하여 글만이 아니라 내 생각을 말로 설명해 봄으로써 이십년에 걸친 나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 사이에 몇 번 코피가 나긴 했지만 나는 그저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이제사 숨돌릴 틈이 생긴 나는 12월 29일 이비인후과에 갔다. 1년 전 부터 시작된 비염을 이제사 돌아볼 여력이 생겼다.
내시경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의사는 지금 비염이 문제가 아니니 빨리 큰 병원에 가 보라고 하였다. 용종이 있다고 할 때, 나를 바라보는 의사의 그 형언할 수 없는 표정에서 말은 하지 않지만 그는 이게 뭔지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해 아산병원에 예약을 했다. 1월 5일 첫 진료에서 의사는 단순한 물혹은 아니라면서 조직검사와 CT, MR 검사를 해 보자고 하였다.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하니 바로 그날 CT를 찍잔다. 결과는 12일에 의사를 만나 들었다. 악성이다. MR, PET 검사는 끝났고, 내일은 아침 일찍 세가지 검사를 더 한다. 그리고 오후에 지금까지 검사에 대한 이야기를 의사로 부터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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