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식당을 하지 못하게 되자 나는 이집 저집 포콜라레 회원들 집을 다니며 아기도 봐 주고, 아픈 노인 시중을 들기도 했다.
막내동생이 대학에 합격한 후, 나는 더 이상 이런 일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우리 집 형제 중 가장 처지는 것이 나다. 여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직장을 찾았다. 남동생 둘은 대학을 졸업하고 자기와 처지가 비슷한 여자를 만나 결혼하게 될 것이다. 그 때 고등학교도 못나오고 시집도 가지 못하고 직장도 없는 손위 시누이가 있다면… 그 땐 내가 동생들에게 짐이 될 것이라는 것이 나의 논리였다.^^
나는 아버지에게 이제는 내 몸을 추스리는 것이 가족을 돕는 것이니 더 이상은 집에 돈을 내 놓지 않고 검정고시를 보고 싶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엄마는 내 말을 듣자마자 “너는 어쩌면 그렇게 이기적이냐”고 화를 냈다. 이기적이라구? 나는 그 말에 오래오래 원한을 품었다.
내게는 가족 이외에 포콜라레 공동체가 있었다. 책임자에게 내가 검정고시를 보고 싶다고 말하자 “글라라, 너는 매 순간 자기 처지에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 그렇게 살고 있잖아. 그거면 됐지 왜 공부를 하려고 하니?”라고 하였다.
머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저는 부모의 지원을 받으며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갖고, 이 공동체에서 책임을 맡아 대접받고 살면서 고등학교도 나오지 못해 이집 저집 다니며 아이나 환자를 돌보면서 푼돈을 받아 집안 살림에 보태는 내게 부족한게 뭐냐고? 이 사람에 대한 분노를 내려 놓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공동체 안에는 다른 사람 유형의 사람도 있었다. 그 때는 추석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그 이는 자기 언니가 명절 앞에 집에서 떡을 만들어 알음알음으로 몇 곳에 파는데 그 일을 도와 달라고 하였다. 보름동안 일을 하자 두달치 학원비가 생겼다. 나는 그 돈으로 종로에 있는 고려학원에 등록하였다. 학원에서는 한달에 한번 시험을 보고 성적우수자에게 한달치 학원비를 면제해 주었다. 나는 그 장학금을 받았다.
그렇게 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책임자가 내게 자기 집안 일을 도와달라고 하였다. 학원이 끝난 후 자기 집에 와서 청소를 하고 저녁식사를 준비해 놓으면 학원비를 벌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학원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내가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그 책임자는 왜 자신이 내가 공부를 하겠다는 것에 반대했는지 이유를 말했다. 그동안 나와 같은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결국 하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헛수고를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내가 검정고시를 통과했을 때 아버지는 막내가 서울대에 합격했을 때 보다 더 기뻐하였다.
그 후, 광명에 있는 작은 공장에서 경리로 일을 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왔다. 광명은 내가 살고 있는 성남에서 너무 멀었다. 사장은 공장 앞에 방을 얻어 줄테니 와서 근무하라고 하였다. 나는 마포의 출판사에 근무하던 명희와 함께 광명으로 이사를 했다.
그 공장에서 일년 반 정도 일했을 때였나? 12월이었던 거 같은데… 명희가 어느 날 신문을 내밀었다. 신문에는 공무원시험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종로의 고려학원 옆에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학원이 있었다. 나도 그 학원에 가서 기웃거려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공무원시험은 나이제한이 있었다. 국가직은 28살… 나는 서른이 넘었다. ”안돼, 나이 제한 때문에…“ 명희는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야무지다. 그건 국가직이고 지방직은 35살까지란다. 1월의 공무원시험에 구경삼아 응시해 보니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장에게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공장을 그만 두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장이 화를 냈다. 나중에는 공무원이 아무나 되는 줄 아느냐면서 생각해 보라고, 너라면 너같이 여자에다 나이도 많은 사람을 뽑겠느냐고 막말을 하였다. 가소롭다는 듯 비웃음을 머금은 그 표정과 입에서 나오는대로 함부로 뱉어내던 말… 그 음성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사장이 한 말을 전하자 아버지는 “그래서 너는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다. 그냥 아무 말없이 듣기만 하다가 사표를 내고 왔다고 하자 “참 잘했다. 네가 우뚝하면 세상은 저절로 조용해진다”고 하였다.
다음 해에 나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였다. 그 소식에 아버지가 통쾌한 듯 껄껄 웃었다. 참 잘하였다고 한 후 첫마디가 ”참 그 사장이 네게는 은인이다.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너같이 물러 터지고 게으른 인간이 공부를 했겠느냐“고 하였다. ㅎㅎ 내 뒤끝은 아버지를 닮았다!
그 후 나는 큰 모임에서 당시 나의 사장을 몇번 마주친 적이 있다. 내가 인사를 하자 정말로 그 사람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떫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 한마디도 뻥끗하지 않았다.
ㅎㅎ 삼십년이 지나고 나니 이런 일들을 덤덤하게 되새길 수 있게 되는구나. 나는 정말 철이 늦게늦게 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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