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내게 취직을 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같은 세상에 고등학교도 졸업을 못하고는 어디가서 사람대접을 받을 수 없을테니 아버지 하는 일을 도우라 했다. 언젠가 다시 공부를 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정말 잠자는 시간과 아픈 때가 아니라면 일하고 일했다!
내가 포콜라레에 눈을 돌리는 것을 아버지는 참 싫어했다. 그 때까지 내 판단과 결정의 기준은 아버지였는데 그 때 처음으로 아버지 뜻을 의도적으로 거스르기 시작했다.
머 그렇다고 거기에 홀딱 빠진 것도 아니었다. 그냥 관찰자 시점으로… 그렇게 처음 마리아뽈리에 갔다.
수학여행을 한번도 가 보지 못했던 내게 삼박사일의 일정은 처음이었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게다가 집에서 도망치듯 나선 길이었으니…
논산의 쌘뽈고등학교에서 열린 그 해의 마리아뽈리는 여러가지로 열악했다. 교실 바닥은 나무로 되어 있었는데 참석자들에게는 얇은 스폰지로 된 매트레스를 하나씩 나눠 주었다. 한 방에 수십명이 같이 잤고, 샤위시설이 없어 7월 말의 그 더위에 씻을 수도 없었다. 500여명의 식사는 임시로 가마솥을 걸고 밥을 했고, 식사 후에는 참석자들이 커다란 고무 다라이에 설겆이를 했다. 한번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설겆이을 한 적도 있다.
모임이 있던 체육관은 2층이었는데 쉬는 시간이 되면 체육관의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나는 누구와 말을 섞는 것도 불편했고, 무엇보다 갈아입을 옷을 가져가지 못했으므로 몸에서 나는 땀냄새도 걱정이 되어 쉬는 시간이면 열어 젖힌 체육관의 문 뒤로 들어가 운동장에서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며 빨리 쉬는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세째날이었나? 모임에서 사회를 보던 노신사가 문 뒤에 숨듯 서 있던 내게로 몸을 반쯤 들이밀며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했다. 싫었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굴에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정운장교수… 그는 내게 이름을 물으며 참 고맙다고 하였다. ‘뭐가요? 저는 아무 것도 선생님에게 한 것이 없는데 왜 그렇게 말씀하세요?’ 내가 그 분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어서란다. 그래도 이상했다. ‘저는 그동안 좋은 말씀을 해 주셔서 고맙다고 하는 것은 간혹 보았지만 잘 들어 주어 고맙다고 하는 말은 처음 들었어요.’ ‘우리는 매 순간 하느님 뜻을 해야 하는데 모임 중 나에 대한 하느님 뜻은 내가 해야 할 말을 잘 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뜻은 잘 듣는 것이란다. 그렇게 사랑으로 잘 말하고 잘 들음으로써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것인데 잘 들어 준 나의 사랑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란다.
처음 접하는 관점이었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강당에는 청중이 500여 명이다. ‘내가 잘 듣는지 안듣는지 어떻게 아세요?’ 그 분은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친 지 20년이 넘는다고 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할 때 듣는 사람의 반응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 오는데 내가 매번 열심히 듣는 것을 보았단다.
왜 나는 40년 전의 이 일을 지금도 기억할까?
경상도 사투리의 그 따뜻하고 낮고 느린 음성과 부드러운 표정…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그 환대의 느낌.
사람은 사람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싶은걸까? 나는 단순하게 인간이기 때문에 존중하고 존중받는 그런 관계를 꿈꾸었지만 그런 관계는 참으로 드물지 않았던가? 지금 온 일생을 돌아 보아도 나를 쓸모로 보지 않는 사람은 정말 몇 번 만나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 날, 그 분에게서 처음으로 내가 조건이나 쓸모가 아니라 그저 사람으로 존중받으며 받아들여진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 삼박사일 동안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쉬는 시간의 그 짧은 대화였다.
그렇게 나는 한발짝 더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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