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 채점을 하다가 문득 오래 전 일이 생각났다.
내가 얼마나 어리버리한 인간인지 깨달았던 순간! 공무원시험 첫 시간에 수험표와 본인 대조를 하던 감독관이 내 책상 앞에서 떠나질 않는다. 뭐지?
그는 한참을 서류와 내 수험표를 번갈아 보더니 내가 교실을 잘못 찾았다고 하였다. 두 반 건너 교실에서 시험을 봐야 하는데… 나는 자리를 잘못 앉았고, 이 자리에 앉아야 할 사람은 결시를 했으므로 내게 비켜달라고 하는 사람조차 없었던 것이다.
어라… 나는 종로학원에서 검정고시 준비를 하였는데 그 옆에 공무원시험 학원이 있었다. 한번 가 보았는데 응시 자격에 나이제한이 있었다. 28살. 이미 그 때 서른이었던 나는 응시조차 해 볼 수 없는 기준이었다. 몇 년 후에야 국가직은 28살, 지방직은 35살까지 응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지방직 공무원 시험을 보던 그 때 나는 34살이었다. 지금 감독관이 이 교실에서 나가라고 한다면 나는 다시는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나는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어떻게 되든 지금은 문제풀이에 집중하자. 다음 일은 나중에…!!
한참 후, 감독관이 다시 돌아와 이 자리에서 끝까지 시험에 응해도 좋다고 하였다. 내가 갔어야 할 교실의 감독관과 의논하여 내가 제출하는 답안지를 그에게 전달하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합격자는 52명이었고, 경쟁률은 50대 1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때는 남녀 구분이 있었다. 여자는 52명 중 6명, 남녀 응시자의 수는 알 수 없지만 여자에게는 더 높은 경쟁률이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나는 수학이 어려웠다. 내가 풀 수 있는 수준은 이차 방정식 정도? 나는 수학은 과락을 면할 수 있는 40점을 목표로 하고 대신 다른 과목에서 다 만점을 받을 작정이었다. 시험을 마치고 나와서 정답을 맞춰 보다가 수학이 50점인 듯 하여 나는 속으로 “합격이다”하고 혼자 좋아했다^^
그 후로도 나는 간간이 그 순간을 떠올리곤 했다. 내 인생은 겉으로 보기에는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출발점이 워낙 돌투성이 땅 속 저 아래다 보니 떡잎이 햇빛를 보았을 때는 이미 해는 서산에 기울고 인생의 가을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책읽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것을 다 포기하면서도 놓지 않았던 유일한 것이 공부였으나 나는 언제나 ‘듣는’ 사람이고, 시험을 치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제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답안을 읽으면서도 내 모드는 여전히 수험생인 듯 하다. 같은 눈높이로 한 학기 동안 내 수업을 듣던 젊은이들의 얼굴과 때로 반짝이던 눈빛을 떠올리며 그들이 쓴 답안을 읽었다.
언젠가 누구와 이야기하다 내가 시험을 좋아한다고 하자 그는 이상하다는 듯이 “왜?”라고 물었다.
내 경우 한 학기동안 뭔 소린지도 잘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수업을 따라 오다가 마지막 시험을 준비할 때에야 비로서 마치 구슬을 꿰듯 그 수업의 맥락이 정리가 되고 목표가 여기였구나하는 것이 보였다.
기말고사의 문제는 한 학기 강의를 한 교수가 “내 수업을 들었으면 이건 알고 가야지”라고 짚어 주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던가. 답안지는 수업에 대한 내 감사의 표시였다. ㅎㅎ 그렇다고 내가 모든 시험을 잘 본 것은 아니고 모든 수업의 목표에 도달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나로서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였던 것이다.
학생들의 답안지는 그 수준에 편차가 있지만 한사람 한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 것이 아니었을까? 수강신청을 하고 수업에 오지 않는 학생도 있고, 중간에 낙오하는 사람도 있는데 빠지지 않고 이른 아침에 강의실에 와서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한사람 한사람이 소중했다. 이제 다시 만날 일이 없을 사람도 있겠으나 내게는 이들과 함께 했던 이 가을 학기가 참으로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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