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지난 며칠 간 받은 선물을 페북에 올리면서 나의 20대 초반, 눈 내리던 어느 날이 생각났다.
중국집을 했던 아버지와 엄마는 주방에서 일하고, 나는 배달을 했다. 그 때는 음식을 흰색 사기그릇에 담아 내었다. 배달을 하면 다시 그 집에 가서 그릇을 찾아와야 했다. 점심시간이면 이곳 저곳 배달갔던 집과 시간을 마음 속에 그리면서 먼저 갔던 집에서 음식을 다 먹었을 때다 싶으면 들러 그릇을 찾아오곤 했다.
그 집에 그릇을 찾으러 대문을 밀고 들어 갔을 때 댓돌 위 쪽마루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먹다 남은 짜장면 찌꺼기를 그릇 채 개의 입에 받쳐주고 있었다. 방 안에는 손님인 듯한 분이 한 사람 있었다.
나는 마당에서 눈을 맞으며 그 아주머니의 얼굴을 찬찬히 보았다. 그리고 그 때 본 그 분의 표정이 내 영혼에 수십년 동안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이다.
가벼운 멸시가 담긴 표정으로 나에게 “개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던 바로 그 얼굴이 개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문득 사랑스러워 못견디겠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 다음에는 얼굴을 손님 쪽으로 돌리며 교양있는 척 살짝 웃으며 양해를 구하는 것이 아닌가. 추위에 눈을 맞으며 기다리는 것은 나인데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있는 손님에게 왜?
나는 마당에 서서 눈을 맞으며 순간적으로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그 사람의 표정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 사람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누군가를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있구나. 그리고 키우는 개를 사랑한다. 하지만 저 사람의 인간성은 나를 바라보는 그 표정에 드러나던 그것이 진짜일지도 모른다…
재밌지 않은가? 저 사람은 제 돈을 들여 음식을 사서 대접을 하면서 손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거지? 그리고 품을 들여 개를 키우지만 나는 그 사람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자기 본성의 밑바닥을 탈탈 털어 다 보여 주네!
그 순간, 나는 내 일생이 남의 집 마당에서 눈맞으며 저런 인간들에게 일생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삶이 되리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개였다. 그렇게 무릎걸음으로 진창을 걸어가며 일생을 살아갈 것인가? 그 앞날이 뻔한 삶을 내 손으로 끝내 버릴 것인가?
내게 죽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하루하루 그 삶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죽음보다 더 어려웠다. 그 때 내 생각에 죽는거야 언제든 맘만 먹으면 가능하니 정 안되겠다 싶으면 그 때… 일단 오늘을 살아보자.
그리고 나는 다짐하였다. 나는 저 댓돌 위로 올라가지 않겠다. 여기 이 바닥에서 결코 발을 떼지 않고 눈 똑바로 뜨고 세상을 “보겠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면서 나는 결코 어떤 명분에도 속아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내 노동력은 힘이 약해 어쩔 수 없이 남의 손에 넘겨줄 수 밖에 없었지만 내 마음은 누구에게도 속아 넘어가고 싶지 않았으므로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응, 그런데 혼자가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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