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한번 갔다오면 며칠은 바쁘다. 감자는 수세미로 닦기만 해도 껍질이 다 일어난다. 부추는 전으로, 비트는 쩌서 소금과 올리브 오일을 넣었다.
비트를 보니 문득 최 글라라 생각.
내가 처음 포콜라레에 갔던 20대 초반, 요리에 감각이 있던 최 글라라는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면 나를 불렀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 해 봐야 장보러 갈 때 따라가 짐들고 오기, 주방에서 일할 때면 야채를 씻거나 나중에 설겆이 하기 정도였다.
사실 그 때 이미 포콜라레에는 재주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나의 쓸모없음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런 사람들 뒤에서 조수만 할 뿐 내가 나서서 뭘 하려고는 들지 않았다. 비트를 먹는 법도 그 때 글라라에게 배운 것…
나보다 일곱살이 많았던 글라라는 환갑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나도 엄마와 같이 살고 있었는데 자기네 엄마와 우리 엄마가 돌아가시고 우리가 혼자 되면 같이 살면 어떠냐고 말하곤 했던 글라라는 이제 없다. 20여 년을 나는 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글라라에게 딱 붙어 있었는데…
1년 넘는 투병 끝에 글라라가 세상을 떠난 것은 2010년, 6월 1일이다. 내가 아직 이태리에 있을 때였다. 나는 귀국 후에 몇몇 사람에게 투병기간과 임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때의 최 글라라 보다 나는 더 오래 살아 있다. 비록 죽음을 한 자락 옆구리에 감고 있다 할지라도…
오늘 종일 글라라와 함께 했던 온갖 묵은 기억들이 떠오른다. 마치 현재진행형인 것 처럼. 비트 한 개가 나를 어디까지 데려 가는건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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