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미사에서 유난히 졸렸다. 다시 누웠다 일어나니 오후다. 평소 밤에 자던 시간보다 오늘 낮잠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피곤만이 아니라 마음마저 풀린 것일까? 몇달 전, 손에 들었으나 놓아버렸던 책을 다 읽었다.
씨앗 하나가 - 정지철 이야기...
공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닐 때, 책을 잡고, 끝을 내는 것은 어떤 경우일까? 나는 공감이나 동의할 수 없는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동의를 한다 할지라도 취향에 맞지 않는 문체를 읽어내는 인내심도 없다. 감정에 들뜨거나, 긍정 일색의 달달이로 코팅된 글을 좋아하지 않으며, 행간에 함축된 것이 없이 풀어진 글도 싫어한다. 그게 내 본래 모습인지, 긴 세월 시간에 쫓기며 틈틈이 책을 보지 않을 수 없었던 환경에 기인한 것인지 그건 모른다.
책을 읽지 않았을 때,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을 이야기하는 것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내용을 깊이 있게 모르니 사람들의 감상이 겉도는 것 처럼 느껴졌다. 이제 책을 덮으며, 지철의 병상을 지키던 형과 누나들이 환갑과 칠순을 넘어선 지금도, 흑백사진 속에서 해맑게 웃는 소년으로 남아 있는 한 사람의 잘린 삶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 아버지는 10살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른 새벽 주먹밥을 허리에 꿰차고 10리가 넘는 길을 걸어 갔던 채석장에서, 감독이 부르는 소리에 내려와 집으로 돌아가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더란다. 그 때, 아버지는 마당을 데굴데굴 구르며 울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 끝에 사람의 나이가 10살이면 상황판단 능력과 직관력은 칠십 노인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하셨다. 다만 노인은 삶의 경험이 많으므로 여러모로 되짚어 생각한 후 행동에 옮기기에 실수가 적고, 아이는 무슨 생각이 들면 바로 해 버리는 것이 다를 뿐이라고 했다. 그러니 아이라도 곰곰히 생각을 하면 칠십 노인의 지혜를 지닐 수 있고, 칠십 노인이라도 생각없이 행동하면 나이값을 못하는 주책없는 늙은이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니 너는 무슨 생각이 떠오르면 먼저 멈춰서 다시 또 다시 생각을 해라' 그 이야기를 나는 10살 이전에 들었다.
그 후, 나 역시 꺾인 삶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생각을 하고 해도 헤쳐 나가기 힘들었고, 긴 생각 끝에 결정을 한 것도 막상 닥쳐보면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내가 몇십년에 걸쳐 겪어 온 것을 짧은 기간 동안 몰아쳐 살아낸 한 사람이 여기 있다.
댓글 0개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