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먼저 이태리에 도착해 도보로 여행을 한 조카는 렌트카의 운전석에 앉자 낯선 차에 살짝 긴장하면서도 설레는 듯 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차에 익숙해지고, 이태리의 도로사정에 적응하면서 약간 즐기는 듯 하더니 COMO에서 베네치아까지 장거리 운전에는 피곤해 하고, 베로나에서 밀라노까지 갈 때는 중간에 내가 잠시 운전대를 잡기도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조수석에서 모든 상황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볼 여유를 얻었다. 조카는 처음에 거의 1km마다 하나씩 나타나는 로타리 때문에 애를 먹었다. 처음 '아니 여기 도로는 왜 이래?' 하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여행이 중반에 들어서자 다른 운전자들과 눈을 맞추고 손신호를 주고받으며 유연하게 대응하고 끝 무렵엔 '아, 로타리가 있으니 신호대기로 지체되는 시간이 없구나. 이게 더 원할하네'하고 생각이 바뀌는 듯 했다. 횡단보도가 아닌 곳을 건너는 사람 앞에서도 차는 언제나 멈추었고, 아직 차도에 발을 들여 놓지도 않았어도 인도 앞에 서 있으면 저기서 오던 차가 멈추고 손짓으로 건너라고 하는 것을 반복해 보면서 조카도 행인에 대해 같은 행동을 했다.
어제 귀국해 인천공항에서 집까지 오면서 전혀 다른 상황을 접하자 조카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앞차와의 간격을 벌이면 끊임없이 끼어들고, 큰 트럭과 버스가 계속 들이미는데다 갓길로 온 차까지 옆에 붙으며 호시탐탐 끼어들려고 하자 '어우~ 이거 화이팅 넘치는군. 절대 끼워주지 않겠어' 라고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사람의 행동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구나.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바탕에 깔려 있는 개인주의 사회와 자기보다 낮거나 약한 사람에 대한 군림과 착취가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계층적인 사회에서 사랑의 행위는 어떻게 다른 결과를 낳는가? 댓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이 같은 척도의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무임승차와 기생을 넘어 적반하장으로 내달리는데도 끝없는 사랑만이 지상명령이라고 같은 행동을 반복해야 할 것인가? 나는 그런 노예와 같은 사랑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내 삶으로 체험했던 진정한 사랑의 가치 또한 모르지 않기에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긴 여행길,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며, 때로는 길을 놓쳐 몇번씩 같은 길을 뱅뱅 돌며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곤 했던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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