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 방사선 종양학과의 주치의 첫 진료가 있었다. 의사를 만나는 시간은 2~3분이었지만 간호사에게 방사선 치료 과정과 있을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긴 설명을 듣고 동의서에 서명했다.
3월 20일에는 모의치료를 하였다. CT촬영 후, 마스크를 만들었다. 흰 망을 4명이 사방에서 팽팽하게 잡아 당겨 얼굴에 밀착시키면서 열을 가한다. 마스크가 굳으면 방사선을 조사할 위치에 표시를 한다. 영화 <철가면>이 생각났다.
3월 27일부터 시작되는 치료는 주 5일 32회가 예정되었다. 워낙 환자가 많아서인지 첫 치료는 밤 9시 40분이었다. 횟수가 거듭되면 낮 시간에 치료받고 있는 사람들이 빠져 나가면서 내 치료시간도 조금씩 앞당겨질 것이라고 하였다.
치료가 시작되기 전, 생각이 많았다. 사람들은 항암보다는 덜하지만 방사선도 어렵다고 하였다. 내가 살고 있는 온수역 근처에서 아산병원까지 왕복 3시간, 병원에서 기다리는 시간, 치료 시간을 더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4시간 반 정도가 걸릴 것 같았다.
이 기간에는 주 1회 방사선 종양학과 주치의 진료와 채혈이 있다. 이와 별도로 이비인후과 외래 진료도 있다. 간호사는 이런 날은 오전에 주치의 진료, 오후나 밤에 방사선 치료로 하루에 두 번 병원에 와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다. 방사선 치료를 담당하는 분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자 주치의 진료가 있는 날에는 치료 시간이 오후건 저녁이건 상관없이 오전에 치료를 해 주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 있지만 운영에는 언제나 융통성이 있었다.
수현이는 여러 날 인터넷을 검색하여 아산병원 근처 에어비앤비 숙소를 두 세곳 추천하였다. 은연 글라라는 힘들 때 묵을 수 있는 비지니스 호텔을 찾아 주었다. 서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밤에만 치료를 받겠다고 신청을 하면 자기가 퇴근 후 운전을 해 주겠다고 하였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나는 일단 집에서 전철로 다녀 보기로 하였다. 정 힘이 들면 그 때 생각해 보기로 하고…
두번째 주까지는 그런대로 다닐 만 하였다. 그러나 세번째 주가 되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이후 점점 심해졌다. 아프다고 하면 마약성 진통제인 마이폴을, 목이 헐어 삼킬 수 없다고 하면 경구영양제인 하모닐란을 처방해 준다. 구강건조증에는 가글을 원내 약국에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어려움을 완화시키기는 하지만 통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네번째 주가 지나면서 구역질이 나고 음식이 역겨워졌다. 구역질에는 그라트릴오디정, 식욕촉진을 위한 메게스트롤아세테이트, 코 부위 피부가 따갑다고 하자 데스오웬 로션… 어떤 식으로든 대응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감당해야 할 기본값은 만만치 않았다.
치료를 받기 전, 나는 이런 과정에 대해 알지 못했다. 암환자가 그렇게 많다고 하는데 왜 나는 구체적인 기록을 찾아 볼 수 없었을까? 대개의 암환자들은 일단 자신의 병에 대해 드러내지 않고, 설사 말을 한다해도 “힘들어” 정도의 표현 밖에 하지 않는 듯 하다. 그 이유에 대해 나는 좀더 깊이 생각해 보려 한다.
어쨌든 나는 치료 마지막까지 온수동 집에서 병원을 오갔다. 후반부에는 동생들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주치의를 만나는 날은 가글이나 영양제를 처방받았는데 그 무게가 만만치 않아 동생들이나 안젤라가 차로 집에까지 실어다 주곤 했다.
주위 사람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실제로는 참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지지에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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