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입국, 22일 출국한 루이지노 교수의 한국일정이 끝난 후, 숨돌릴 틈도 없이 필리핀으로 떠났고, 이어 24일 한국에서는 40여명이 필리핀으로 떠났다.
내가 탄 필리핀 항공의 일행 중에는 낯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22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젊은이와의 대화에 참석했는데 그날 필리핀의 EoC학교가 있다는 말을 듣고 바로 함께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왜요? 마음이 끌렸고 더 알고 싶었단다. 우와~ 그럴 수도 있구나!
나는 2005년 필리핀에서 열렸던 EoC학교에 참석했었다. 그때는 루이지노 교수와 얼마 전 돌아가신 레오, 두 분이 왔었다. 그 당시 출간된 루이지노 교수의 '상호성'에 대한 레오의 강의는 지금도 생생하다. 그 학교에서 나는 EoC에 매혹되었다.
그 후, 2008년 부터 2년 동안 소피아 대학에 다녔다. 나는 거의 강의를 알아듣지 못했다. 한국에 돌아와 그 곳에서 배웠으나 이해하지 못했던 EoC의 강의노트와 녹음파일을 통해 더듬더듬 발을 떼기 시작했다. 2013년 논문을 끝낼 때 참 아쉬웠다. 이제 간신히 분위기 파악을 한 거 같은데... 공부를 이어갈 수 있을지 그 때는 알 수 없었다.
작년 이맘 때, 일면식도 없는 한 교수님에게 내 석사논문을 첨부하여 메일을 썼다. 나는 크리스찬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EoC의 인간에 대한 관점과 '관계론'을 동양의 사상과 연결해 보고 싶었다. 물론 이 나이에 동양사상을 공부할 시간은 내게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신영복 선생님의 책 '강의'와 '더불어 숲'에서 그분의 글을 곱씹어 읽는 동아리가 있다는 것을 알자 다시 맘이 움직였다. 메일에서 나는 신영복 선생님의 '입장의 동일함'을 EoC의 관계론과 연결해서 논문을 쓰고 싶고, 그 분의 강의는 직접 들을 수 없더라도 재직하셨던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올해 입학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신영복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벽제에서 돌아와 나는 '네째 왕의 전설'을 다시 꺼내 읽었다. 소피아에서는 강의를 알아듣지 못했고, 이제는 관계론에 대해 신영복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볼 수 없다. 나는 번번이 너무 늦게 도착한다... 결국 멀리가지 못할 것이다.
그런 나에게 지난 열이틀은 무엇이었을까?
루이지노 교수가 19일 입국했을 때 부터 22일 출국까지 나는 공식적인 강연만 들은 것이 아니다.
20일 국회의 강연회와 이어진 간담회 후 국회 건너편의 호텔로 돌아오자 로비에는 조선일보의 기자 두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9시 반이었고, 이미 모두가 지쳐 있었다. 30분만 이야기를 하자던 기자들과의 시간은 11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21일 이른 아침, KTX로 대전으로 이동하여 성심당을 방문하고, 오후의 강연회와 말미의 기자회견, 다시 성심당에서의 저녁식사를 마치고 밤 10시가 넘어 다시 서울로 오는 기차에 올랐다.
22일 점심식사가 끝나기 전에 도착한 중앙일보 기자의 질문은 한 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서울시청에서 열리는 젊은이들과의 대화가 시작하기 20분 전에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고, 시청에서의 2시간이 끝난 후, 루이지노 교수는. 바로 공항으로 출발하는 참으로 숨가쁜 일정이 이어졌다.
국회와 대전의 강연회, 서울시청의 젊은이들과의 대화는 내용과 전달방식이 다 달랐다. 각각의 강연회와 대화를 따라가며 나는 소피아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소피아대학은 이태리의 여러 도시에서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 여러 교수들의 출판기념회가 열렸고, 정치나 경제에 관한 포럼도 있었다. 그 때 내가 놀랐던 것은 학교에서 한 학기 내내 들었던 강의를 1시간도 안되는 발표시간에 압축하여 요점을 짚어내는 것이었다. 한국의 포럼에서 언어를 다 이해하면서도 심상하게 들어넘겼던 어떤 주제는 사전이해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을 했던 것도 그 때였다.
단어 하나, 몇 줄로 이뤄진 짧은 문단 하나가 품고 있는 의미가 묵직하다는 것, 마음에 와 닿는 단어 하나를 움켜 쥐고 그 뿌리를 캐다보면 거기서 심연이 열릴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경험했다.
강의든 포럼이든 교수나 발표자는 내가 알고 싶은 것을 깔끔하게 요리하여 한입에 쏙 집어 넣을 수 있도록 차려내는 사람이 아니다. 그 역시 단지 탐구와 모색을 이어가는 길 위의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말을 통해 몰라서 관심조차 없었던 어떤 것에 관심을 갖게 되기도 하고, 화두처럼 가슴에 품고 있던 간절한 물음에 답을 얻기도 한다. 그의 말은 씨앗처럼 다양한 토양의 땅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단 두시간의 만남으로 일주일간의 여행에 따라나서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실망으로 고개를 내젓기도 한다.
기자들의 심층취재 자리에 함께 있었던 내게는 그 집요했던 질문이 글이 되어 지면에 실린 것을 보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미리 얼마나 준비를 했던지 질문은 정확하게 핵심을 짚었고, 기사는 좋았다. 마치 혼자 산길을 걷다가 사람들의 무리를 만난 듯 했다. 같은 곳을 향해 걷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든든한 일이다.
필리핀은 더 풍요로웠다. 일단 시간이 많았고, 2005년에 비해 교수진도 훨씬 다양해졌다. 5일간의 학교는 아침 8시 반부터 저녁 식사 후까지 계속 일정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태리어가 귀에 들리자, 말하는 사람의 감정과 논리에도 더 몰입이 되는 듯 했다. 그동안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닌데 왜 말이 더 잘들리는지 그것도 신기한 일이다.
첫날 프로그램은 오후 3시에 시작되었는데 점심시간 그 짧은 틈에 교수 일행은 근처 호수에 다녀 왔다고 한다. 루이지노가 호숫가에서 본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지닌 생명력과 유연한 적응력을 이야기할 때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견뎌내며 지니게 되는 내적 힘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나는 사람을 바라보는 그 깊은 시선이 좋았다.
지난 6개월 동안 많은 사람이 온 힘을 다해 루이지노 교수의 방한과 강연회를 위해 노력했으나 정작 행사 중에는계속 뜻밖의 일이 생겼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아쉬움이 있었던 내게 필리핀에서의 닷새는 마치 누군가 어깨를 토닥여 주는 듯한 격려였다. 한국에서는 짧은 시간 때문에 강연 중에 한두마디로 밖에 언급하지 못한 식물의 생명력에 대해 들을 때 나는 위로를 느꼈다.
동물은 모든 중요한 부위가 머리에 모여 있어서 거기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으면 살 수 없다. 그러나 식물은 자신의 부위 중 20%만 남아 있어도 다시 생명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딸기줄기처럼 그렇게 흙에 닿을 때 마다 뿌리를 내리고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낮은 모습으로 세상에 번져가리라는 희망과 다짐을 우리는 함께 나누었다. 잘하고 강해서가 아니라, 약함을 받아들이고 멈추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뻗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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