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그 때 나는 왜 로삐아노에 갔을까? 보통은 무슨 큰 모임이 있을 때 사람들과 함께 가곤 하던 그 곳을 그 해에는 아무도 날 부르지 않는데 그냥 혼자 갔더랬다.
핑계가 없지는 않았다. 루이지노 교수는 그 무렵 성서를 읽으면서 책을 한 권씩 내고 있었다. 그 해에는 L‘alba della mezzanotte를 출간했고, 이박 삼일의 저자와 함께 읽는 독서모임을 했다. 그거이 성서경제학교가 되어 지금은 정례화 된 듯하다. 나는 거기에 날짜를 맞추었다.
내가 묵었던 숙소는 소피아 맞은편 산 속의 작은 집이었다. 거기서 혼자 열흘 남짓 있었다. 예레미아 서를 해설하는 루이지노 교수의 강의에 나는 정말 매혹되었다. 아, 성서는 이렇게 읽는거구나 싶었다. 루이지노는 내가 그 성서 시리즈 중 하나를 번역하고 싶어하니까 창세기부터 하지 말고 욥기를 먼저 하라고 권했다. 욥기에 대한 한국 독자의 반응을 보고 그 담에 뭘 할지 생각하자고…
욥기는 어려워…ㅠㅠ 나는 돌아와 다른 저자들이 욥에 대해 쓴 글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여기 세 권 말고도 더 되는 거 같은데… 그러나 정작 루이지노의 글은 시작도 못하고 여러 해가 지났다.
이제 공동번역 하던 L’ethos del mercato도, 내가 혼자 한 Economia vegetale도 출판사로 넘겼다. 어제 의사는 수술이 잘 되었다고 했다. 다음 병원에 갈 날은 한 달 반이 남았고, 가을 학기에 강의도 없으니 이 좋은 시절을 머하고 노나…
오늘 아침 느지막이 학교에 와서 책장을 뒤적이다 욥기를 꺼내 들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어 이번에는 이걸 한 번 찬찬히 읽어볼까 궁리 중.
“욥기는 성인들을 위한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이나 적어도 매우 소중한 사람의 삶에서 불행을 조금이라도 경험해 보았어야 한다.”
댓글 0개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