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아침 7시 집에서 출발, 9시 부터 김동춘 교수님의 '계급과 계층', 오후 2 시 부터 서울시민대학 조효제 교수님의 '인권' 첫 강의를 들었다.
강의가 끝나자 마자 국회로 갔다. 국회는 평소와 다르다. 포럼이 열리는 3층 식당 복도에서 부터 로비까지 카메라와 기자와 보좌관들이 가득하다. 사회포럼은 저녁식사로 시작될테지만 나와 율리안나는 식당에서 미리 밥을 먹기로 했다. 옆 테이블에서는 한 그룹의 국회의원들이 라면을 주문한다. 그 중엔 정치포럼의 회원인 분도 있다. 우리를 보더니 다가와 "아~ 지금 이래서... 사회포럼 참석이..."라며 아쉬워 한다.
모임이 끝나고 뒷정리를 마치니 거의 10시가 가까운데 근처 호프집에 몇몇이 모였다. 남쪽 바다 끝에서 온 신부님 , 대구에서 온 교수님,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합류한 서울의 몇몇 분들... 쉽게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분들이고, 앞으로 얼굴을 맞댈 기회는 적겠지만 함께 공동작업을 하게 될 사이라 헤어지기 전 잠시 인사라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는 짧지 않다. 졸렵다고 내가 중간에 김을 빼도 우리가 일어난 시간은 12시가 넘었다.
바쁜 동생이 먼저 자리를 뜨며 차를 가져가고 나는 안젤라네 집에서 자기로 했다. 올해 들어 벌써 몇번째인가? 처음 몇번 그 집에서 자면서 차 안에 아예 외박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해 가지고 다녀야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여전히 이렇게 불쑥이다.
다음날 아침 아직 대구에 내려 가지 않은 교수님을 명동에서 만나 아점을 먹고, 커피 한잔 마시고 남부교도소로 갔다. 면회를 마치고, 이번엔 도곡동. 사회포럼 날짜를 29일로 알았다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그럼 그 시간은 비워 놓았겠네? 우리는 만나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이것도 나쁘지 않은 걸! 더 오붓하잖아? 어제 사회포럼에 왔다면 그저 눈이나 한번 맞추고 말았을텐데 더 찐하게 노네^^ 나쁜진 않지~ 그러나 안젤라가 집까지 데려다 주었어도 귀가시간은 밤 11시가 넘었다.
토요일에는 다시 정치학교의 두번째 날이다. 금요일 하루는 집에서 쉬어야 한다.그러고 보니 지난 일요일 부터 사회포럼 준비에 잠겨 지냈다. 발제자들의 원고를 함께 수정하느라 쓸데 없이 거의 원고를 외울 지경이다.
생각하면 EoC는 지난 15년 간 내 삶을 걸었던 화두이다.. 느지막이 들어간 대학이 어쩌다 보니 경영학과 였고, 3학년 말, 졸업논문으로 EoC를 주제로 보여드리자, 교수님은 안된다고 하셨다. 학사논문 주제로는 너무 무겁고, 우리나라에는 맞지 않고, 교수가 자신도 모르는 내용의 논문을 지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반박할 논리가 없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이야기하자, 우리나라에도 그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는 분이 있다고 한다. 수소문 끝에 그분의 이메일 주소를 받았다. 며칠 후 정중하고 친절한 답장이 왔다. 몇번을 거듭 읽고 나니 '니가 과연 할 수 있겠니? 아예 시작을 하지 않는게 나을걸~' 이라는 음성이 행간에서 들려왔다.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뭐라고 답을 썼지? 두번 째 메일은 아주 짧았다. 하고자 하는 일이 잘 되기를 기원한다는 것이다. 메일에는 첨부파일이 하나 있었다. 5년째 쓰고 있다는, 아직 끝내지 못한 300 페이지가 넘는 자신의 박사논문 원고가 통째로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중 20페이지 정도를 출력해서 교수님에게 가지고 갔다. 한주일 후, 만난 교수님은 군데군데 형광펜과 밑줄이 그어진 그 종이를 뒤적이더니, '논문으로 나를 한번 설득해 보라'고 하셨다. 나는 그 교수님을 따라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리고 2학기 후 휴학을 했다. 공부를 할 생각이면 이태리어 먼저 배우라는 조언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태리어 연수차 갔던 뻬루쟈에서 일시 귀국해 소피아대학에 가기로 하고, 자퇴를 하러 학교에 가서 그 교수님을 다시 만났다. 그 분은 자퇴는 이태리에서 학위를 받아온 후 해도 늦지 않다며 휴학을 권했다.
몇 해 후, 수료로 귀국해 다시 복학하면서 나는 교수님에게 물었다. '제가 떠날 때 이미 해내지 못할 것을 아셨던거지요?' 그 분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3학기 강의를 마저 듣고, 석사논문을 EoC로 썼다. 10년 전, EoC를 우리나라에 적용하기에는 너무 이상적이라고 한 바로 그 교수님이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메시지라면서 논문을 정리해 꼭 학술지에 실을 것을 당부하셨다. 지난 10년, 우리나라는 빠르게 변했던 것이다.
오늘 아침, 눈을 뜨는데 문득 EoC는 경제에 다른 판을 깔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인식의 틀을 바꿔가고 있는 것이다.
왜 루이지노 교수의 방한 강연회에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왔을까? 조선비즈에 실린 그분의 인터뷰 기사 조회수는 며칠 사이에 1,700명이 넘었고, 그 강연회를 계기로 한겨레 주최의 아시아미래포럼 기조연사로 초청을 받았다. 이게 무슨 일인지 그 때는 분간도 되지 않았다. EoC는 한국에서 포콜라레의 문턱을 넘어섰고, 대청마루에 나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이 물길을 돌이킬 수는 없을 것이다. 이 흐름은 몇몇의 의도나 열정으로 열어가거나 되돌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고통과 갈망이 EoC를 호명하고 있는 것이다.
댓글 0개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