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화요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마산교구 홈피 '제언'에 새글이 한꼭지 올라오기 때문이다. 총대리가 된 배신부님은 자신의 어릴 적 소소한 에피소드를 하나씩 풀어 놓기 시작했다. 처음 그 글을 읽던 날, 나는 배를 움켜쥐고 몸을 꼬면서 웃었다. 그리고 웃음 끝에 눈물이 핑 돌고 가슴 찡한 것이다. 한번은 어~ 이래도 되나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다음 주 글에 교구 여성단체들의 항의를 받았다며 사과의 글이 올라왔다 .ㅎㅎ 다행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맛깔나는 어법은 달라지지 않았다. 몇 달이나 내 맘을 흔들던 엉뚱꼬마가 신학교를 거쳐 초짜 신부가 되었다. 애독자로서 이 놀라운 성장에 기쁨의 인사를 보내지 않을 수가! "얄개가 자라서 돈 까밀로가 되었네요!"
제언 -------------------------------------------------------------------------------------------------
흰돌이
배기현 콘스탄틴 신부
남해 섬엔 가인포(加仁浦)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 있다. 그곳에서 보건소를 차려 도와주던 수녀님들이 떠나면서 개 한 마리를 주고 가셨다. 이름이 흰돌이었다. 크기는 발바리만 하고 하얀 털이 하도 북실해서 달릴 때라야 까만 두 눈이 보일 정도였다. 너무 이쁜 짓도 많이 하고 그래서 신자들뿐 아니라 남해읍 주민들로부터도 ‘성당개’로 통하며 많이 사랑받았다. 만3년 정도 데리고 사는 동안 개 아빠는 전교하여 신자들을 많이 모았고, 아들 개는 미신자 개들과 접촉하여 성당개 새끼들을 많이 불렸다. 그 개 아버지가 아들 개를 두고 떠나야만 했던 이별의 시간이 가까이 오자, 평소에 개는 개답게 커야 한다고 언제나 밖에서 재웠던 것을 예전 같지 않게 하도 들어올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끝이다 싶어 방에 들여다 놓았더니, 이불 맡에 자고 일어나 아침 미사 직전 내 잠을 깨워주곤 했다.
첫 본당을 끝으로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야 했기에, 이 이쁜 것을 데리고 갈수도 없었거니와 이미 내 개가 아니라 공동 성당개였기에 그냥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허리를 두 번이나 수술했고 서양말로 공부하기엔 나이도 솔찮았기에 참으로 하루하루가 버거운 나날의 유학생활이었다. 한 2년쯤 됐을까, 남해성당에서 편지가 한 장 날라왔다. 겉봉투에 적힌 - 누군가 대신 써 준 - 알파벳 글씨를 보고 갸웃했는데 열어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말과 글씨가 딴판인 것이다. ‘신분님 전상서’로 시작되는 편지내용은 글을 모르는 할머니께서 초등학교 손녀를 시켜 ‘부르고 – 쓰는’ 식으로 몽땅연필로 개발새발 작성된 것이었다.
…… 우짤거나 요 사실로 알리야 댈까 우째야 댈까 신분님 힌도리가 주구비리심미다. 밥도 안무꼬 장 하는 짓이 한부는 성당앗따가 한부는 산에 갓따가 한부는 읍내로 띠 댕기다가 그라다가 신분님캉 장 댕기던 뒷산 기슬게 빼싹 몰라 굴무주구비리심미다. ……
편지를 들고 부들부들 떨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마치 이순신 장군이 끝아들 면(葂)의 부고를 접하고 미쳐 날뛰며 통곡했다던 그 심정 반은 되었던 것 같다. 흰돌이의 개혼을 위해 연도를 바치고 나서 혼자 생각했다. 흰돌이는 개이기에 존재론적으로 나보다 열등한 미물에 불과하나, 사랑함에 있어서는 나보다 훨훨훨 나았다고. 천국 문간 앞에는 인간들이 사랑했던 개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꼭 만나 아빠 손잡고 가기를 간절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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