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우이 선생님,
우연의 점처럼 흩어져 있던 독자들이
선생님과의 만남을 통해 인연이 되고 운명이 되어 더불어숲으로 모였습니다.
선생님과의 만남은 따뜻한 추억이 되어 우리 안에 살아 있습니다.
설렘 가득했던 산행과 소풍, 고즈넉한 저녁 산책, 수업 후에 차 마시며 나눈 이야기들......
선생님은 제자들과 스스럼없이 땅탁구를 치고,
생신날 받으신 소박한 촛불조차 수줍어하시면서도
서화 작품을 통해 힘을 얻고자하는 약자들에게 든든한 언덕이 되어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저희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셨습니다.
처음 오신 분들은 따뜻하게 환대하며 맞이해주셨고,
가끔 오시는 분들은 반가워하시며 안부를 물어주셨고,
애쓰는 분들과는 늘 함께 하시며 걸어가셨습니다.
선생님의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새롭게, 깊게, 때로는 아프게 느껴집니다.
선생님의 글과 서화를 여럿이 함께 나누는 즐거움은
그 의미가 몇 배로 확장되는 소중한 공부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어려운 고비마다 우리에게 지혜를 주었고,
나 자신과 사회를 성찰하는 맑은 거울이 되어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아낌없이 과분한 사랑을 베푸셨지만
감사의 마음을 못다 표현한 우리들은
부치지 못한 편지를 보며 눈물짓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청년이셨습니다.
문사철의 이성과 시서화의 감성을 두루 갖추신 참으로 보기 드문 지성인이셨습니다.
60년대 말 군부독재 시절, 고문으로 조작 확대시킨 사건으로 인해 20여 년을 복역하셨지만
원망이나 회한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척박한 감옥을 깨달음의 대학으로 여기시고,
거기서 만난 동료들의 경험을 목발 삼아 변화하셨습니다.
변화시키려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하게 열어주셨고,
가르치시려 한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며 배우셨습니다.
감옥에서 화장실 청소를 귀중한 업무처럼 도맡아 하셨고, 영치금의 절반을 떼어 공금으로, 남은 것의 절반은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 일화는 선생님이 한 번도 언급하지 않으셨지만 최근에 전해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삶 전체가 교육자이셨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봄바람처럼 따뜻하셨지만 자신에게는 가을서리처럼 엄정한 분이셨습니다.
낮은 곳으로 나아가 연대하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라는 선생님의 '관계론' 철학은, 반인륜적 무한 경쟁 시대에 석과불식(碩果不食)과 같은 희망이었습니다. 사람과 생명을 살리는 일, 양심을 지키고 자기를 작게 가지는 겸손으로 우리도 그 희망을 살아내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가을, 더불어숲을 지키던 두 분의 그루터기를 먼저 떠나보냈습니다.
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의 스승이자 시대와 역사의 스승을
떠나보내는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힘들 때, 참된 어른의 말씀을 듣고 싶을 때 얼마나 간절히 선생님을 그리워할까요?
위중한 병환 속에서도 선생님은 아픈 내색 않으시고 밝게 웃어 주셨습니다.
따뜻하고 맑은 미소로 오히려 우리들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마지막까지도 아끼고 배려하시는 사랑과 인내였습니다.
더불어숲은 이제 선생님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힘찬 용기로 이겨내려 합니다. 선생님의 책으로 그 따뜻하면서도 준엄한 등불을 환히 밝히며 더 많은 이웃이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도록 나누겠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 곳곳에 선생님이 스며 있습니다.
선생님과 걸어온 이 여정 하나하나를 가슴에 새기고
선생님의 뜻을 계승하여, 함께 여는 새날을 만들어가겠습니다.
더불어숲 속에서 인간다운 품성을 키우고 사회적 양심을 지키며
수많은 양심의 나무들과 소통하고 나누겠습니다.
강물처럼 흘러 넓은 바다에서 만나자는 그 언약, 잊지 않고 실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영원히 사랑합니다.
하늘에서도 흐뭇한 미소로 함께 하시리라 믿으며 평안을 기원합니다.
2016년 1월 18일 더불어숲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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