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이 어둑해질 때까지 자다깨다를 반복하다 완두콩 스프를 끓였다. 거의 열 달 만에 다시 음식을 만든다.
호중이가 딴지마켓에서 샀다면서 보내준 프랑스제 버터, 명희가 농사지은 완두콩과 양파, 은주쌤이 준 감자 3개, 안젤라가 준 볶은 소금…
컨디션이 다시 나아지는걸까?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은 적다. 어제처럼 하루 종일 이어지는 모임에 가려면 며칠 전부터 체력을 비축하고, 모임에 다녀온 후에는 다시 며칠 몸을 추스리기 위해 잘 쉬어야 한다.
벌써 몇 년째 같은 장소에서 모임을 하기 때문에 나도 어느 자리가 편한지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걸리적거리지 않고 가방도 잘 둘 수 있는 곳. 조금 떨어진 내 앞에 “그”가 있다.
나는 도시락을 가져가는 대신 주차비를 내더라도 차로 가기로 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아침에는 눈까지 내리는 바깥 기온에 노출되는 것은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사는 집에서 2.5km 더 가야하는 부천에 산다. 모임이 끝날 무렵, ‘어떻게 왔어?’하고 물었더니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왔다고 한다. ‘갈 때는 내 차로 같이 갈래?’ 좋단다. 그런데 동행이 있다고 한다. 그럼 그 분도…
그 두 사람의 아파트 앞에 차가 도착한 것이 거의 저녁 7시. ”그“는 ‘우리 동네 중국집 짜장면이 맛있는데 같이 먹고 갈래?’ 한다. 나는 마파두부밥, 그는 사천탕면… 식사가 끝난 후, 자기는 차 키를 집에 두고 왔는데 올라가서 키를 가져와 차를 빼기 귀찮으니 마트에 같이 가 달란다. 마트에서 장을 본 후 다시 아파트에 데려다 주고 집에 도착하니 9시가 가까웠다.
”그“는 몇 년 전, 내 누클레오 책임자였다. 성격이 쾌활하고 적극적이며 무엇보다 매우 활동적인 건강함은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매우 예민했다. 사정을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어서 더 속이 끓었던 때… ”그“가 한 어떤 말이 내 벌어진 상처를 건드렸다. 나는 이렇게 생각없고 무신경한 책임자와는 말을 섞을 수 없다고 전체 책임자에게 이야기하고 더 이상 모임에 가지 않았다. 이런 일은 나에게 만이 아니라 그에게도 책임자로서의 실패감을 느끼게 한 상처였을 것이다.
내가 내 차로 같이 가자 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나도 알고, 그도 알았을 것이다.
이렇게 매듭 하나를 풀었다.
댓글 0개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