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아라 루빅이 필리핀에 온 해가 언제였던가?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필리핀으로 갔다. 그 때 나는 작은 그룹의 책임을 맡고 있었는데 그 중 한사람이 출국 전에 다리를 다쳤다. 그런데 포기를 않고 휠체어를 타고 가겠다는 것이다. 우리 그룹은 한 방에 같이 자면서 그 사람을 돕고 여행 내내 번갈아 휠체어를 밀고 다녔다.
끼아라와의 모임이 있던 날, 강당 안은 빼곡했고, 휠체어를 밀고 있던 나는 마땅한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럼 맨 앞으로 가면 되지! 나는 강당의 무대 옆, 끼아라의 자리를 마주 볼 수 있는 곳에 휠체어를 세우고 그 뒤에 섰다. 그리고 무대를 등진 채, 끼아라가 강당에 들어올 때 부터 나갈 때 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끼아라가 강당을 빠져 나간 후, 그제사 내 핸드백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강당 여기저기서 가방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놀란 소리가 들렸다. 대규모 국제행사에 도둑들이 함께 들어온 것이다.
숙소에 돌아온 후, 여권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착한 소매치기에게 필요한 것은 현금 뿐이었던가보다. 내가 비상금으로 가져간 돈은 30불 정도 였으므로 수고에 비해 보상이 적었네.
어쨌든 나는 1달러도 없었으므로 다른 사람들이 마닐라 시내에서 쇼핑을 할 때 매우 한가했다.
타가이타이에서 동네 구경을 하며 좀 어슬렁거리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사람이 내 곁으로 오더니 살짝 손에 돈을 쥐어 주었다. 기념품을 좀 사라는 것이다. 50불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가지고 온 돈 보다 더 큰 액수가 아닌가!
나는 그 때,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30년도 더 지난 어느 날,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내가 그 이야기를 하자 나 글라라는 그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그 일을 지금까지 기억해 주어 고맙다고만 하였다.
나는 사진을 감상할 줄 모르지만, 페북에서 그 분이 찍은 사진을 볼 때면 타가이타이 햇빛 쏟아지던 그 언덕길에서 빙긋 웃으며 다가오던 얼굴이 겹쳐 보인다.
댓글 0개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