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04836455798:2048:Vincenzo Bordo]신부님을 처음 본 것이 언제지? 25년 전, 서강대 마리아뽈리에서 강당 문 앞에 배낭을 맨 자그마한 외국인을 보았다. 다시 몇 달 후, 신흥동성당에서 그 분을 보았다. 보좌신부로 발령을 받은 것은 아니고, 본당신부님을 도우며 한국말을 배우고 있었다. 어느날 미사 후 정문 앞에서 나를 부르더니 부탁이 하나 있다고 한다. 한달에 한시간씩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다.
뭔 이야기요? 난 할 말이 없는데... 무슨 말이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란다. 내가 한국어로 하는 말을 자기가 못알아 들을 때 되물으면 그걸 자기가 알아 듣도록 설명해 달라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한달에 한번씩 성당 지하의 빈 주일학교 교실에서 만났다.
그 때가 언제인가? 포콜라레 모임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 소개를 할 때였다. 다니는 학교도, 속한 직장도 없고, 누구의 아내도 엄마도 아니었던 나는 얼굴을 외로 꼬고 딱 이름만 말하고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더랬다. 그랬던 내가 처음으로 직장을 가졌던 때가 그 무렵이었다. 그러나 조직 안에서 개밥의 도토리로 사는 것은 얼마나 더 절망스러웠던가!
그런데 이 외국인 신부님이 내게 말을 해 보랜다. 중간에 못알아 들었다고 말을 가로막는 일은 없었지만 나는 이 분이 내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쩌면 제 정신으로는 결코 입에 올리지 않았을 내 맘 속의 슬픔과 상처와 회한을 몇달에 걸쳐 털어 놓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날, 내 말을 들은 자기 느낌을 아주 짧은 한국어로 표현했다. '개미가 앞으로 가는데 앞이 막혔어요.' 검지와 중지로 걷는 개미의 시늉을 하던 신부님은 책상 위의 책 앞에서 손을 멈췄다. '개미는 이걸 넘어갈 수 없으니까 이쪽이나 저쪽으로 피해서 가요. 사람도 살면서 넘어설 수 없는 어려움을 만나면 이쪽이나 저쪽으로 방향을 꺽게 돼요. 살다가 앞에 큰 걸 만나면 그 이전과 달라져요. 이전과 같은 사람으로 있을 수 없어요. 더 좋아지거나, 더 나빠지게 돼요. 글라라도 장애를 만나면서 그 전처럼 있을 수 없었어요. 그런데 더 나빠지지 않고 더 좋은 사람이 되었어요' 그 순간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리고 여러 해가 지났다. 내가 구청의 사회복지과에서 근무할 때, 신부님은 산성동 복지회관에서 노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었다. 봉사자들이 있었지만 신부님은 언제나 그분들과 함께 주방에서 일했다. 가끔 노인복지팀에 오시던 그분에게서는 언제나 시큼한 음식냄새가 났다.
다시 몇 해 후, 신부님은 성남동 성당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식당을 열었다. 어느날, 나는 물었다. '신부님, 신부님은 가난한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탐욕스런 부자와 선량한 가난한 사람이라는 이분법에 동의하지 않아요. 가난한 사람 역시 탐욕스럽고 이기적인데 힘이 약했을 뿐이고 기회가 되거나 입장이 바뀌면는 지금의 부자들과 다름없이 행동했을 사람 아닐까요? 그런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이제는 한국어로 의사표현을 하는데 거의 어려움이 없어진 신부님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낮게 답했다. '네 글라라 말이 맞아요. 가난한 사람이 다 착한 사람 아니예요'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다른 차원으로 넘어 갔다. 그 다음 말을 나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의미는... 가난한 사람은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지킬 힘을 기를 기회. 배우고, 존중받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고, 그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고 했던 것 같다. 그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사람을 사람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 그가 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행위를 하게 된 처지나 동기를 이해하려고 더 깊이 보고, 그 상처와 약함을 감싸 안는 것일까? 신부님은 노숙자들의 거친 모습을 다른 차원으로 보는 것이다... 그 때는 은행에 자동이체 제도가 생기던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는 구청의 다른 과와 시청을 다니며 아는 직원들의 자동이체동의서를 수십장 받아 모아 신부님에게 드렸다.그런 시선에 동의하는 마음을 표하고 싶었던 듯 하다.
낯선 정장의 신부님 사진을 보며 존재 자체가 선물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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