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 모임에 대한 복기.
모임이 있기 전, 작은 글씨로 가득한 프로그램을 카톡으로 받아 보고 나는 놀랐다.
도저히 두 시간 안에 담을 수 없을 것 같은 이 프로그램을 소화하려면 각 발언자는 5분을 넘겨서는 안될 것이다. 왠만한 내공이 아니고는 짧은 시간에 정리된 말을 하는 것이 쉽지 않으니 누군가는 말이 늘어질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거기서 뭔가 끌어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모임이 시작될 때까지 도착하지 못한 사람들과 전화 통화를 하느라 1부는 거의 모임에 집중하지 못했다. 초대한 분들이 다 도착하고 자리를 잡고 나자 배가 고프고 기운도 좀 없었다.
로비에는 물과 떡, 성심당의 빵이 있다. 내가 물을 마시면서 배가 고프다고 하자 글라라가 자기 가방에서 김밥을 꺼내 주었다. 목 안이 헐어 물만 마셔도 아프기 때문에 뭘 먹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나는 한 줄을 다 먹고야 강당으로 들어갔다.
내 옆의 이가람 박사는 프로그램 뒷면이 깜지가 되도록 빼곡하게 메모를 하며 집중하고 있다. 이가람 박사는 연대에서 열렸던 비판사회학회에서 처음 만났다. 그의 발제를 들으며 인쇄물의 참고서적에 루이지노 교수의 책이 있는 것을 보고 내가 말을 걸었던 것이 인연의 시작이다. 그는 국회에서 열렸던 루이지노 교수의 강연회에 왔었는데 그 후 한국에서 강연회를 주최한 사람들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었다며 우리의 만남을 신기해 했었다. ^^
진행자가 발언자들에게 짧게 말해 줄 것을 간간이 청했지만 비교적 모임은 순조로웠다. 그러나 마지막 질문답 차례에 시간은 이미 9시다. 청중의 질문을 받기에는 촉박했으나 실은 이 시간이 압권이었다.
김성곤 이사장은 우크라이나를 예를 들며 포콜라레 운동의 역할에 대해 묻고 내가 모르는 한 분은 일치의 비결은 무엇인가 그리고 종교간의 대화에서 포콜라레가 이야기하는 일치는 포콜라레가 주도권을 잡는 일치인가 물었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에 참석자들은 매우 기뻐하였다. 마가렛과 헤수스의, 압축되었으나 분명한 방향제시와 포콜라레 운동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설명은 온유하게 세상의 분열과 고통을 끌어안는 포콜라레 운동의 마리아적 특징을 또렷이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호텔 로비에서 이어진 우리의 끊이지 않던 소감나누기에서 이 모임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는지 실감하며 나도 마음이 타올랐다.
다음 날 아침, 북어국집에서 아침을 먹고 호텔로 돌아와 허교수님과 다시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늦은 시간에 체크 아웃을 하고 빗 속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는… 가방을 문 앞에 둔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방사선 치료는 주 5일 진행된다. 치료시간은 10분도 안걸리지만 오가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내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중간에 쉬는 시간도 점점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말을 맞으면 이틀 내내 침대에서 …^^
밤에는 이은주 박사가 팥죽을 가지고 왔다. 구로구청 옆의 매생이칼국수 집에서 전라도식으로 새알을 넣고 끓이는 팥죽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일부러 가서 사온 것이다. 삼키기 힘들까 봐 새알을 다 골라내서 팥죽 양이 줄었다고 한다.자기는 새알만 먹고…ㅋㅋ
이은주 박사는 두번째 루이지노 책 번역에 합류했으나 이 모임에는 오지 않았다. 소식을 전하고, 이은주 박사가 쓰고 있는 글에 대해서도 약간 이야기했다. 그는 한국학술재단의 지원을 받아 광진구의 사회적기업들을 연구하고 있다. 그 도구는 루이지노 교수의 상호성 이론으로 출발한다. 나는 이 글을 매우 기다리고 있다.
허문경 교수는 내가 좀더 공부하기를 바랐다. 그는 내 병에 대해서는 짐짓 가볍게 대하면서 내게 그 너머를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이번 모임을 통해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이다.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에서 보았던 것 처럼 살아야 할 이유가 사람을 살게 하기 때문이다.
현 순간에 충실하면서 눈 앞의 고통에 매몰되지 않고 시선을 들어 올려 “그 너머”를 향해 “함께” 걷는 것. 이 기쁨과 행복이 단지 기억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우리 사이에 구현되도록 사는 것.
그 가능성을 확인하며 서로의 체온으로 마음을 녹이고 각자의 마음을 장작처럼 쌓아 올리면서 불을 지폈던 순간, 그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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