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에서 메일이 하나 날아 왔다. 미국인인 그는 회의 때문에 이태리에 왔다고 한다. 뻬루쟈에서의 내 친구 Bob.. 거의 2년 만이라 그는 자기가 쓰는 메일을 내가 받아볼 수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면서 썼다.
뻬루쟈에서의 첫 수업날. 나는 강의실이 어딘지 찾을 수 없었다. 문이 강의실 앞쪽에 하나뿐이어서 들어서자 지각생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급한대로 맨 앞줄의 빈 자리에 앉았다.
첫날의 강의는 자기소개... Come ti chiami? Mi chiamo... 로 시작되는 몇 문장을 가르쳐준 후, 대뜸 둘씩 짝을 지어 서로에 대해 물어보고, 그 사람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한다. 그 때 내 짝이 Bob이었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언어로 의사소통을 했을까? 그는 미국 한 수도원의 수사이다. 이 수도회의 본원은 이태리인데 2년에 한번인가 총회가 있다. 총회에 오면 각 나라에서 온 대표들이 이태리어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그는 올 때마다 언어때문에 소외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태리어를 배우리라 큰맘먹고 총회가 있기 몇 달 전에 뻬루쟈에 온 것이다.
쉬는 시간에 커피머신 앞에서 커피를 마시겠느냐고 물었더니, 약간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주머니에서 동전을 하나 꺼내 준다. 내가 돈이 없다고 하는 줄로 알었나보다...^^
오전 강의 후, 내가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집에 가서 먹겠다고 한다. 그리고 오후의 강의에 오지 않았다. 나는 Bob을 위해 프린트물을 하나 더 받아 문제의 답을 써서 다음날 아침 그에게 주었다. 왜 오지 않았느냐고 하자 오후 강의는 다른 건물에서 한다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hee hee~ 우린 수준이 비슷하다.
그날부터 우리는 언제나 같이 앉았다. 그는 강의를 거의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에 수업 중에는 지금 교수가 어디를 설명하는지 계속 손가락으로 짚어 주고, 쉬는 시간에 다시 설명을 해 주어야 했다.
그렇게 한달 반쯤 지났나? 복도를 지나가는데 한국말이 들렸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한국어인가! 나도 모르게 다가가 인사를 청했다^^
뻬루쟈의 두오모성당에는 이 도시에 공부하러 온 신부님들을 위한 기숙사가 있는데 그는 거기서 Bob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Bob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매일 자기 옆자리의 한국 여자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한국인 신부들과 Bob은 점점 친해졌다고 했다.
다음날 나는 뻬루쟈에 공부하러 오는 한국 신부님들 사이에 면면히 전해지는 온갖 자료와 영화가 가득한 USB카드를 선물받았다.
한동안 Bob이 수업에 나오지 않았다.
어느날 건물을 나서는데 길건너 계단에 그가 앉아 있었다.
학업 스트레스로 심장에 무리가 와서 열흘이 넘도록 입원을 했었다고 한다.
작별인사를 하러 온 그의 손에 작은 선물이 들려 있었다.
초코렛이 가득 담긴 에소잔 세트였다.
지금도 뜨거운 여름 햇볕아래 계단에 앉아 있던 그가 눈에 선하다...
미국으로 돌아간 Bob에게서 해마다 크리스마스 카드가 왔다. 작년엔 소식이 없어 혹시 세상을 떠난건 아닐까 싶었는데... 건강하고 바쁘게 지내고 있다는 그는 내년이면 80세가 된다고 한다.
오늘 그의 메일을 받고 다시 에소잔을 꺼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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