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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매체에서의 기사와 이러저러한 강연회 소감을 접하면서... 눌러버리고 싶은 책임감이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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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매체에서의 기사와 이러저러한 강연회 소감을 접하면서... 눌러버리고 싶은 책임감이 꿈틀거린다.
정말 저렇게 말했을까? 저렇게 알아들을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을까?
대전MBC의 홈페이지 편집된 특집방송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http://www.tjmbc.co.kr/0506/player/id/4525
정작 그날, 나는 무대 뒤에서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의 강연과 PPT를 맞추지 못해 경황이 없었다. 오늘 이 방송을 다시 보며 이제사 그 메시지에 젖어든다.
소피아대학은 첫 해에 정치, 경제, 철학, 신학의 4부문의 강의를 전 학생이 다 듣는다. 어느날 내게 '글라라는 이태리어를 못알아 들어 울고 있지만, 사실 이 학교에서는 글라라만 우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 학교의 강의수준은 높고, 언어에 문제가 없는 이태리인 학생도 자신의 전공과 다른 분야의 강의를 알아듣기 어려워 운다'는 것이다. 그렇구나! 뭘 알아들으려면 '사전 이해'라는게 있어야 하는거였구나...
그러나 이번 강연회 후 들려오는 반향을 접하며 나는 '사전 이해'가 때로는 새로운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새로 접하는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사전 이해'와 여백이 공존하는 지점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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