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제7회 한겨레아시아미래포럼 기조연사로 방한한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는 그 행사 중 잠시 옆방으로 자리를 옮겨 로마와 영상으로 연결하여 문학상을 받았다. 그 때 상을 받은 책이 바로 이 <숲과 나무>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 책의 번역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두려웠다. 이태리어를 배울 생각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내 목표는 이태리어로 된 책을 이해하고 논문에 인용할 수 있을 정도까지였다. 나는 이태리어로 누구와 말을 나눌 정도로 공부할 생각도 없었다.
이렇게 어정쩡한 내가 어떻게 번역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더듬더듬 읽어나가며 나는 차츰 이 책의 내용에 깊이 매혹되었다. 그리고 이 글을 내가 아는 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어졌다.
초벌 번역을 끝낸 후, 나는 동냥젖을 구걸하는 심봉사처럼 이 책의 번역을 봐 줄 이를 찾았다. 제일 먼저, 나의 선생님인 요나수사님에게 부탁했다. 처음에는 도저히 틈을 낼 수 없다는 답이 왔지만 그 담에 며칠에 한번씩 수정한 원고가 메일로 날아왔다. "대강 보았고, 이대로는 '절대' 안된다"고... 그러나 나는 잘못 읽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받은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시조시인 장정애, 허문경 교수님, 마지막으로 원고를 봐 준 사람은 김재윤 전 의원이다. 그는 올해 시인으로 등단을 하였다! (http://www.seogwipo.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4266)
내가 좋아하는 대목은 2장 "보상제도와 영혼"이다. '조직이 지녀야 할 첫 번째 지혜는 구성원들의 영혼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라는 대목은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다. 조직만이 아니라 누구나 '다른 사람의 영혼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상대가 있는 그대로 내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 주어야 한다. 그럴 때라야 나의 가난한 마음이 그에게 내어준 빈 공간은 신적 자유로움으로 충만할 것이다.
인센티브incentivo, 마법incantesimo, 뱀의 매력을 지닌 교활한 사람incantatore이 어원이 같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2장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요셉과 포티파르의 아내 이야기다. 요셉을 유혹하던 포티파르의 아내는 요셉이 거절하자 오히려 자신이 요셉에게 추행을 당했다고 무고한다. 요셉은 옥에 갇히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루이지노는 충성심의 세 가지 영역을 이야기한다. '신뢰의 관계가 위험에 처했을 때 구체적 대가를 감수하면서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행동을 하되 드러나지 않게 함'으로써 충성심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마지막의 '드러나지 않는 행동'에 대해서는 누구도 감사하지 않겠지만 인간 관계와 인간 존재 전체에 품위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라고 루이지노는 쓰고 있다.
겸손, 너그러움, 연민, 자비, 시기심과 존중, 기쁨과 권태에 대해 이야기하는 각각의 장은 매 번 예상을 넘어서는 예리한 통찰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해 깊은 신뢰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결코 값싼 희망이나 긍정이 아니다.
내게 가장 의미심장한 것은 10장, 대지의 선물이었다. 안식일과 희년은 현실과 동떨어진 고리타분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루이지노는 바로 그 주제로 우리가 선 이 자리,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어떻게 인간을 착취하고 소진시키고 폐기처분해 버리는지 알아볼 수 있는 시야를 열어준다. 그리고 안식일의 정신과 휴경제의 문화를 자본주의 시장경제 안에 다시 되살릴 것을 희망한다.
책 말미의 “저자의 글”은 루이지노 교수가 한국어판을 위해 특별히 따로 써 준 글이다(루이지노 교수의 책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고 있지만 번역서 마다 그가 따로 글을 써주는 것은 아니다!).
이제 책임감에서 벗어나 내 손을 떠난 이 책을 자유로운 독자가 되어 다시 읽는다.
이 책을 보신 한 주교님께서 책의 문장이 요나수사님 버금가게 좋다고 하셨다. ㅎㅎ 그야 요나수사님의 손길이 닿은 글이니까요. 이 책 한 권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지문이 뒤섞여 정밀 감식을 해도 누가 누군지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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