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벙커 1에서 들은 김동춘 교수님의 강의 메모. 아침에 다시 보아도 함의가 탄탄하다.
촛불 이후 한국 사회 어디로 가는가?
이 책은 90년 부터 올해까지 쓴 글을 매년 한편씩 골라 엮었다. 83년부터 90년대 중반까지는 재야학자로, 97년 이후는 교수로서 쓴 글이다. 87년 이후 90년대 초까지의 시기는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지고, 진보정당 근처에서 이데올로그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입장이 바뀌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이념과 가치, 사상을 가지고 지탱할 것인가 라는 고민을 하던 시기였다. 지금 스스로를 생각할 때, 학문을 30년 했다면 뭔가 이론을 하나 내놓아야 할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함께 한편으로는 생각을 크게 바꾸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국은 아직 국가가 제대로 되지 못하고 않은 나라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비판적인 사람은 나에게 세상을 삐딱하게 본다고 하겠지만 나는 아직도 식민지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본다. 식민지 체제란 국가 시스템이 작동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국가를 지배하는 사람이 최소한의 도덕성, 법을 지키는가, 어느 정도의 정당성을 지니고 있는가 라는 문제이다. 물론 나는 이상적인 국가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식민지를 경험하지 않은 나라와 경험한 나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서구에는 식민지이론이 없다.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것은 우리가 아직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식민지 상태라고 것이다.(외세가 점령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국민의 참여에 의해 법을 만들어 내지 못했고, 좌·우를 떠나서 국가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주도적 세력으로 드러나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근대국가란 어쩌면 철지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나는 최근 한국인이라는 의식보다 아시아인, 세계인라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국민국가라는 틀이 국민들을 기만하고 착취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한다. 류 샤이보오, 티벳에 대한 탄압, 수많은 자살자가 나오는 중국을 보라. 영국 빌딩 화재의 피해자는 영국 지배층이 버린 사람들이었다. 프랑스 오스트리아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말 해피한 국민국가의 구성원은 별로 없고, 동아시아에는 아직 국가가 제대로 작동하는 곳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박열처럼 식민지 사회를 뛰어 넘으려고 하다가 인생 후반기에 민족주의자로 돌아서고 마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는 이제 세계시민이 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제대로 된 국민국가를 제대로 만들어 보지 못했지만 이제는 서구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구의 미래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영국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70~80년 대까지 나는 민족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는데 90년대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들을 보면서 민족주의는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계급문제는 내가 사회학자로서 평생을 씨름하고 있는 주제이다. 내 박사 논문은 한국 노동자의 고립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한국 노동운동이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 내 진단이었다. 현재 대기업의 노조는 비정규직과의 연대보다 자신들의 일자리가 더 중요한 일이 되었다. 한국 노동자가 건강한 주체로 설 수 있을까가 내 20년의 고민이다. 박근혜정부가 무너진 지금이 문제는 한국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가 아니라 아시아가 어디로 가는가 세계가 어디로 가는가 신자유주의는 어디로 가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이 거대한 주제를 감당할 지적 능력이 있는가가 나의 고민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좌파의 지지가 아니라 우파의 포플리즘으로 나타나고 있다.
촛불시위는 박근혜의 엄청난 퇴행에 대한 국민의 분노이지만 그 바탕에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바람이 있고,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고등학생들의 참여이다. 우리 사회의 10대가 선명하고 직선적이었고, 마음에 다가왔다. 이들이 느끼고 주장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했다. 진주의 19살 여고생의 “박근혜가 물러난다고 내 삶이 달라질까”라는 질문이 보여주는 것 처럼, 지금 문재인을 지지하는 80%는 조건부 지지이다. 내 삶이 가시적 변화가 일어날까라는 조건부이다.
이시대의 최대 화두는 우리 사회에서 걷잡을 수 없는 양극화와 청년실업이다. 촛불시위는 표피적인 것이다. 그 밑에 깔린 생각은 87년 당시 학생과 화이트칼라가 관념적으로 제기했던 국민주권을 실질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비선실세, 그 뒤의 재벌이 국가를 움직인다면 나는 뭐지? 라는 생각, 내가 나와 관련된 일에 참여할 수 없다는 그건 뭐지? 라는 것이다. 촛불시위는 주말에만 나가지만 직장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가야 한다. 주말이 아니라 주중에 가는 직장, 거기에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정치적으로 변화를 가져온 의미있는 정권이지만 신자유주의에 함몰된 정권이었다. 일반인은 삶에서 어려웠던 시기이고, 어려움의 정점을 찍은 것이 박근혜 정권이었다.
촛불이후 한국사회는 열려 있다. 문재인 정권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반은 정권, 반은 시민사회가 이끌어 나가야 한다. 이제 촛불은 해체되고 여론의 형태로 남아 있다. 하지만 제도적 권력이 없는 상태에서 여론은 너무나 약하다. 문재인 정권은 촛불이 아니어도 탄생할 정권이었다. 촛불이 정권교체 만의 의미라면 별 것 아니다. 그러나 70년 동안 정치를 주도한 수구·보수세력이 갈라졌다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합리적 보수와 수구 보수가 구분되었다. 나는 국민의 당이 해산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거대 여당과 거대 야당이 담합하는 구도에서는 우리 사회가 복지국가로 갈 수 없다. 삶의 질이 나아지려면 다당제로 가는 것이 낫다. 정당간의 연합과 타협이 되어야 한다. 세금을 올리는 것을 야당이 받아들여줄 리가 만무하다. 혁명이 아니라면 타협 밖에 없는데 타협을 위해서는 다당제로 가야 한다. 이번 최저임금을 통해 타협의 정치가 열린 것이라고 본다. 이를 위해 지방선거에서 대구 경남 경북에 지자체장이 바른정당에서 나오고 전쟁정치는 타협의 정치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은 개인으로는 많이 준비되었으나 세력으로는 준비되지 않은 정권이다. 개인적으로 내심 정치부심하면서 겉으로는 온화하게 준비를 해 왔을지라도 세력이 없다 . 세력이 없다는 것은 당이 없다는 것이다. 더민주당는 집권을 위해 준비된 당이 아니다. 복지 교육 노동정책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은 우리 사회가 좋은 정권으로 가기 위한 교량역할을 하고, 앞으로 3번 정도 정권이 이어져야 한다고 본다. 루즈벨트는 3번 집권을 했는데 그 때 미국의 복지가 토대를 잡았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관료체제가 자리를 잡고, 관료체제를 감시할 수 있는 시민사회가 착근을 하는 것이다. 한국은 직업윤리가 정착되지 않은 사회이다. 백남기 사망 시 백선하의 태도가 보여주듯 의사 변호사 등의 전문가 집단의 윤리가 바로 서지 않았다. 두 번째는 지역사회에서 자신들의 의제를 공론화하고 띄울 수 있는 조직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 그 때문에 지방선거 때면 낙하산이 내려오고 그들은 언제나 주민을 배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이 두 가지 위에서 정치는 독립변수가 아니라 종속변수이다.
촛불이후 우리 사회는 열려 있다. 책임의 반은 정치가에게 있지만 반은 시민사회에 있다. 촛불시위는 혁명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투쟁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권은 쫓아냈지만 대안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우리가 정당, 시민사회, 직업집단의 주체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연구자로서 그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는 자문을 한다. 나는 논문만 열심히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30년이 지나서 보니 한국사회는 사람을 마모시키고 마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는 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사람을 죽이는 사회다.
나는 촛불시위가 비젼까지는 아니지만, 단군이래 최대 스펙을 지닌 우리의 20대에게 장을 열어 주었다고 본다. 마크롱이 갑자기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니라 10년 이상 단련을 한 것이다. 우리의 20대에게도 그런 장을 열어주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물적기반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정권은 무너져도 인프라를 만들었어야 하는데, 김대중은 그것을 하지 못했고, 노무현은 생각은 했지만 정권 초기에 노동계와 너무 부딪치느라 하지 못했다.
나는 부자들이 가진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기부를 하고, 사회적 상속을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까지는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거나 조금 더 나가봐야 고아원 양로원까지 였다. 그러나 사회가 그런 약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데 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지금 50대 이상은 사고의 지평이 열려있지 않다. 세계적으로 보면 세금을 걷어 문제를 해결하는 유럽의 방식과 기부에 의지하는 미국의 방식이 있다. 나는 유럽방식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사회는 과도하게 미국에 기울어 있으므로 절충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조세부담율 24%인 나라에서 갑자가 40%로 가는 것은 어렵다. 그러므로 가진 사람들의 기부를 장려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 교육 복지를 OX로 가서는 안되고 모든 사람이 지혜로워져야 한다고 본다. 문재인 정권이 잘하는가 보자가 아니라 우리가 주권자로서 재탄생해야 하는 것이다. 스위스는 1년에 20번 투표를 한다. 정책에 대한 투표까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한국식 민주주의는 껍데기 민주주의다. 우리 시민은 더 많은 참여와 고민이 필요하다.
촛불시위에서 흩어진 대중이 다시 여러가지 사안으로 모여야 한다. 올해 6월 항쟁 30년 기념사업회가 생겼는데 이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썰전을 보는 것도 좋지만 언론은 결국 엔터테인먼트이다, 내가 액션을 취하고 참여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한국민주주의의 과제이고, 세계 민주주의의 과제이다. 정당만이 대안이 아니다. 정당이나 노조는 19세기적 조직이라고 본다. 시민운동적 성격을 지닌 노조, 사회운동적 성격을 지닌 정당처럼 대중을 일상적으로 참여시킬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20대 혹은 10대가 새로운 조직의 형태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면 좋겠다. voice는 목소리이기도 하지만 주장이기도 하다.
그 점에서는 아시아 중 한국의 미래가 밝다고 본다. 일본은 시민이 이니시어티브를 갖기 힘들고 중국은 엄청난 억압과 배제가 같이 가고 있고, 권력을 감시할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 아시아는 중국만이 아니라 캄보디아, 베트남도 있다. 촛불시위는 민주적 자산이고 이를 수출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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