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뻬루쟈 지역의 솔선자 피정 이야기.
피정 첫 날, 누군가의 승용차로 로삐아노 행. 우리는 늦은 오후에 도착했는데 좀 늦었나보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견학을 갔단다.
나는 큰 모임 때면 언제나 강당 맨 뒤, 벽에 딱 붙어있곤 했지만 여기서는 그럴 수 없다. 다른 대륙에서 온 유일한 이방인이니 맨 앞자리, 그 지역 솔선자 책임자 바로 옆에 앉으라고 한다. ㅠㅠ
이어지는 모임은 citta nuova에서 구독 신청을 받아 달라는 말을 하러 온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무대에서의 이야기가 끝난 후, 참석자들이 나오더니 마이크를 잡았다. 무대에서 말을 하던 사람(바오로?)과 또 다른 한 사람이 무대 아래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드센 이태리 아줌마들이 끝없이 나온다. 그리고 엄청 열을 내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나중에는 나도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분위기 파악이 되었다. 요는, “너는 이 잡지의 구독자를 늘이기 위해 우리에게 노력을 하자고 권하지만 재미도 없고, 요즘 사람들의 마음을 끌지 못한다. 우리 집 아이들이나 남편도 보지 않는 잡지를 남에게 어떻게 권하라는 말이냐” 머 이런 이야기인거 같은데 바오로가 20분 정도 이야기를 했다면 참석자들의 항의와 이견은 그 두배도 넘는 시간이 걸려도 끝이 안나는 것이다!
나는 이 광경이 우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옆의 책임자에게 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포콜라리노가 하는 이야기에 솔선자들이 이렇게 거침없이 반대의견을 이야기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이게 국민성의 문제냐? 아니라면 왜 이렇게 다르다고 생각하느냐?” 잠시 생각하던 그 분은 “ 내 생각에 그건 민족성이라기 보다 언어의 문제인 거 같다”고 한다. “무슨 뜻이지? “ 이태리에서는 포콜라레에서 발행되는 모든 담화와 책이 모국어이니 원하면 누구나 다 접할 수 있다. 솔선자들도 포콜라리니들과 똑같은 것을 보고 듣고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정보의 비대칭문제가 생기지 않으며 대등하게 토론이 가능하다. 반면 언어가 다른 나라는 모든 자료가 다 즉시 번역 가능한 것이 아니니까 선별과 우선 순위가 생기는데 그 과정에서 결정권이 있는 사람들에게 힘이 실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이 끊이지 않는 반론의 줄은 저녁식사 시간 전까지 이어졌고 우리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사가 끝날 무렵, 유리잔을 포크로 가볍게 뎅뎅 치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내일 아침 프로그램의 시작시간 보다 30분 정도 일찍 강당으로 와 달라는 공지가 있었다. 바오로(맞나?)가 우리에게 다시 이야기하고 싶은게 있단다.
다음날 아침, 거의 전운이 감도는 강당에서 바오로는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먼저 어제 발언한 사람들 한명 한명의 이름과 내용을 되짚으며 그 의견을 인정했다. 그 다음에 “우리가 단지 구독자 수를 늘이기 위해서 뭔가를 한다면 어렵겠지만 우리의 삶이 바탕이 되어 있다면 상대는 citta nuova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받아 들이리라”는 말을 이어 갔다. 그 말을 하는 바오로의 진정성과 겸손함은 어제의 그 드센 분위기를 일거에 변화시켰다. 말이 끝나자 우뢰와 같은 박수와 찬사가 쏟아졌고, 모두의 환송을 받으며 바오르는 떠났다. 그가 떠난 후에도 모두 기뻐하며 바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말이 사방에서 이어졌다.
나는 그 건강한 토론에서 포콜라레가 지닌 저력이랄까 생명력을 느꼈다.
왜 오늘 그 생각이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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