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삐아노에는 성당이 세 곳 있었다. 로삐아노의 중심인 테오토코스, 입구의 성당(이름을 잊었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가장 깊숙한 곳에 있던 수녀원 성당.
수녀원에서는 아침 6시 미사가 있었다. 소피아에서 내 걸음으로 30분. 나는 수녀원 미사를 좋아했다. 성당에 도착하면 나보다 먼저 한 남자가 있었다. 미사가 끝나면 문 앞에서 서로 짧은 인사를 나누곤 하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언제나 말없이 먼저, 혼자... 약간 굽은 모습의 느린 걸음으로 저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돌아올 때, 가끔은 인치사에서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올라온 신부님이나 젠 베르데의 차를 얻어 타기도 한다. 어느 비오던 날, 미사가 끝난 후, 신부님의 차를 그 남자와 함께 탔다. 신부님은 그 분을 집 앞까지 모셔다 드렸다. 외진 숲 속, 눈에 띄지 않던 집. 그 분은 의사였고, 지금은 casa verde에서 살고 있는 포콜라리노이다. 젊었을 때는 아프리카의 폰템에서 일했다고 한다.
나는 한번도 그와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 그러나 매일 아침 그를 보며 생각하곤 했다. 사람의 생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타오르다 어떻게 사그라지는가. 그 삶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몇 년 전 그가 천국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받던 날도 그 물음이 내 안을 오래오래 맴돌았다.
사람만이 아니라 조직도 생애주기가 있는 듯 하다. 비록 곱게 사그라지지 못하고 파국에 이르고 말았다 할지라도 그 때문에 빛나던 순간의 아름다움조차 그 가치를 폄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열망은 죽음이나 파국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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