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이맘 때, 명퇴신청을 하고,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휴가를 모아 보니 거의 두달을 쉴 수 있었다. 퇴직 후, 나의 첫 나들이는 더불어숲 교실 참여였다. 안내를 하는 분은 더불어숲 교실은 신영복선생님이 직접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끼리 그 분의 글을 함께 읽는 자리라고 했는데 뜻밖에도 첫날 신영복 선생님이 오셨다.
그 때는 영문을 몰랐지만, 신영복선생님이 도착하면서 주최 측의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사람들 중에는 가져온 책에 싸인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몇명 있었는데, 차마 막지 못하며 그들을 바라보는 눈길이 말보다 더 강하게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 듯 했다.
나중에야 신영복선생님의 병과 그 자리에 오신 것이 올만 해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 사람들의 애타는 심정이 이해되었다.
10주에 걸친 더불어숲 교실이 끝날 무렵 선생님이 한번 더 오셨다.
나는 선생님이 앉으신 자리에서 두 줄쯤 뒤에 있었으므로 선생님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말이 들려왔다 전날 밤을 응급실에서 보내고 아침에 집으로 돌아오셨다며, 한밤에 응급실로 가는 차 안에서 본 한강의 풍광을 이야기하신다.
얼마 후 앳된 여학생이 들어서자 선생님이 반색을 하며 옆자리를 내 주었다. 오늘의 발제자는 아마 어려서 부터 부모님의 손을 잡고 신영복 선생님과의 모임에 오던 꼬맹이였던 모양이다. 그 학생을 바라보며 웃는 선생님의 눈길에서 정이 뚝뚝 떨어진다. 서울대 철학과 2학년이라는 그 학생이 선생님의 글에 대한 발제를 마무리지어가자, 선생님은 옆자리에 놓인 그 학생의 핸드백을 자신의 무릎에 얹더니 소리나지 않게 의자를 뒤로 물려 놓았다.
그 무심한 듯한 작은 배려가 내게는 참 인상적이었다. 나는 선생님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 본 적도 없고, 싸인을 부탁하지도 않았지만 선생님이 사람 하나하나를 어떻게 대했을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었을 지, 인터뷰어를 어떻게 대했을 지가 생생하게 그려지기 시작한 것도 그때의 더불어 숲 교실의 경험 이후 이다.
성공회대학교의 직원이나 학생들과의 인연이 그대로 어려았는 이 전시회에서 나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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