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맑다. 모카를 가스불 위에 올려 놓고 마당에 나가 무화과 나무 가지에 빨래를 널었다. 그런데 들어오려고 하니 문이 잠겨 있다. 여긴 닫으면 문이 저절로 잠기는데... 생각을 못하고 열쇠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옆 집으로 달려가 벨을 누르자, 이른 아침 벨소리에 놀라 창문마다 사람들이 내다 본다. 문을 열어준 사람에게 사정이야기를 하니 열쇠를 accoglienza에 가서 가져와야 한단다. 그런데 난 가스불 위에 모카를 올려 놓았다!!
그 때 뒤에서 한 사람이 비상키를 들고 나온다. 내가 문을 두드린 집은 포콜라레이고, 내가 묵고 있는 집은 손님집이다. 가까운 포콜라레는 만일을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들어오니 이미 커피는 끓어 넘쳤다...ㅠㅠ 덕분에 잠 완전히 깨고 행동도 좀 빠릿해지기 시작.
아무래도 코스에서 교재로 사용할 책을 절반도 읽지 못한 채 가게 될 모양이다. 구글번역기를 쓰니 로밍은 했으나 하루에 사용하는 데이타 양이 너무 많아서 곧 거덜이 날 지경이다.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을 찾자, 한 포콜라레에서 거실을 내어 주었다. 거실의 탁자를 밀어 붙이고, 야외용 테이블과 식탁의 의자로 금새 내 공부방을 만들어 주었다.
여기서 느끼는 편안함은 무엇일까? 상업적이거나 규격화된 친절이 아니라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대하는 것. 한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그런 분위기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한국에서의 그 식상한 용어와 얄팍한 친절이 없다는 것도 매우 맘에 든다. 환한 미소와 상투적인 용어, 과장된 친절에 나는 얼마나 긴장하였던가!
오전 내 책을 읽다가 미사에 갔다. 어제 도착한 한국사람들... 정말 세대가 바뀌고 있다. 다 내가 모르는... 젊은 사람들이다.
거실을 빌린 것으로 모자라 숟가락도 얹는다. 날씨가 화창하니 식사는 밖에서 하잔다. 식사를 준비한 Anni는 예쁜 상차림이 스스로 만족스러운지 사진을 찍는다. 나도 옆에서...
이 포콜라레에는 팔순이 넘어 약간 정신이 흐린 분도 있다. 정말로 현순간만 산다(Anni의 표현^^). 나에게도 수없이 이름을 묻고 그 때마다 매우 반가와하며 ‘아! 글라라. 참 좋은 이름이네’ 하고 살짝 안아주거나 볼을 쓰다듬어 준다. 착하게 살아온 사람은 정신을 놓아도 곱구나 싶다. 그리고 여기서는 그런 이들을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어우러져 함께 사는 것이다. 오늘도 여러 차례 어떻게 자신이 이 이상을 알았는지, 그동안 무슨 일을 하며 지냈는지 내게 이야기해 주었다.
식사 후 Anni도 자신의 도전과 결단과 그 후 포콜라레에서의 생활을 잔잔하게 들려 주었다. 식사 후에는 좀 누워서 쉬라며 자기 침대를 내 주었다. 겨우 이틀 밖에 되지 않았는데... 정말로 집보다 더 집같은 느낌이고 가족보다 더 가족같은 느낌이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걷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이런거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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